눈 검사 해도 이상 없는데 글 겹쳐 보이면 '얼렌증후군'
색조 렌즈 안경 끼면 교정효과
대학 2학년인 강모씨(서울 동작구)는 수업 때마다 색조 렌즈 안경을 쓴다. 책을 오래 읽으면 두통이 생기고 글씨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렌증후군'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력 탓만 하면 안돼"
얼렌증후군은 난독증의 한 종류이다. 시력검사를 하면 이상이 없는데도, 글씨가 흐리거나 겹쳐 보인다. 얼렌증후군은 이러한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얼렌(Irlen) 박사의 이름을 딴 것으로, 미국에서는 인구의 12~14%가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렌증후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이안안과 임찬영 원장은 "우리나라도 미국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얼렌증후군은 움직임·형태·위치 등을 파악하는 시신경 세포가 작거나 불완전해서 생기는 것으로 의료계는 추정한다. 시각적인 정보가 망막을 거쳐서 대뇌로 전달될 때 특정 빛의 파장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임찬영 원장은 "이 때문에 형광등이나 밝은 햇빛이 비칠 때 난독증이 심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대안산병원 안과 김승현 교수팀이 얼렌증후군 환자 11명과 얼렌증후군이 아닌 난독증 환자 5명을 조사했더니 증상이 약간 달랐다. 얼렌증후군 환자는 문장이 겹쳐 보이거나(72%), 문장 줄이 바뀔 때 잘 찾지 못하고(46%), 책을 오래 볼 때 눈 통증을 느끼거나 흐려 보이는(27%) 증상이 많았다. 난독증 환자는 오래 볼 때 흐릿해지고(100%), 읽은 곳을 또 읽고(60%), 눈이 피로해지는(40%) 증상을 호소했다.
서울성모병원 안과 박신혜 교수는 "아이가 또래에 비해 책 읽는 속도가 느리거나 글자를 읽을 때 눈이 아프다고 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안과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큰 병원 안과에서는 읽기·쓰기 속도 및 시각적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정도를 측정해 얼렌증후군 여부를 진단한다.
◇색조 렌즈 안경으로 교정
아직까지 뚜렷하게 밝혀진 치료법은 없다. 다만 색조 렌즈 안경을 착용하면 글자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박신혜 교수팀이 얼렌증후군 환자 25명에게 색조 렌즈 안경을 쓰게 한 뒤, 글자를 읽는 속도와 만족도를 조사했다. 환자 8명(32%)은 청색 계열의 렌즈를 사용했고 4명(16%)은 회색 계열을 썼으며, 그 외에도 노랜색·붉은색 등 다양한 색조 렌즈가 사용됐다. 환자들의 읽기 속도는 안경 착용 전 분당 82.72글자에서 안경 착용 후 101.84글자로 늘었고, 환자들이 "읽기가 편하다"고 만족한 정도는 4.08점(5점 척도)이었다. 박 교수는 "색조 렌즈 안경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특정 빛의 파장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며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를 통해 자신에게 맞는 색의 렌즈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헬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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